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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속 장애인 이야기-남경욱]도움의 일선에서 마주치는 딜레마 [더 세션: 이 남자가 사랑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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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기간 (사업내용 개발 후 작업 예정)
등록일 2020-08-05 오후 8:12:48

도움의 일선에서 마주치는 딜레마 [더 세션: 이 남자가 사랑하는 법]

 

 

남 경 욱

단국대학교 특수교육과 연구교수

 

 

 

 

영화 더 세션 포스터 이미지

 

 

아이소리의 독자들 중에는 필자처럼 직업적으로 혹은 봉사라는 이름으로 장애인과 함께 하는 삶을 사는 분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이런 일에 종사하다보면 누군가로부터 “참 좋은 일 하십니다!”라는 인사를 건네받고 머쓱해질 때가 있다. ‘내가 과연 그런 소릴 들을 만한가?’ 가만히 돌이켜보면 종종 양심에 걸렸던 경험들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특수교사 한 분이 필자에게 자신의 경험을 들려준 적이 있다. 자신이 담당했던 학급에 심각한 발달문제를 지닌 유아가 있었는데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부모와의 긴밀한 협력이 요구되었다고 한다. 아이들에 대한 열정이 가득했던 자신은 책임감을 가지고 그 가정에 깊이 개입하려 했지만 예상 외로 교장선생님이 반대하고 나섰다는 것이다. 그 이유인 즉슨, 아이의 부모도 심각한 삶의 문제를 가진 분들이기에 자칫하면 책임질 수 없는 일에 휘말릴 수 있고, 종국에는 교사 자신이 소진되고 말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결국 그 교사는 학교 안에서 제한적인 도움을 주는 것 외에는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이 고백에는 자신이 교사이면서도 현실적인 어려움 때문에 아동에게 최선의 것을 주지 못했다는 마음 속 걸림이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사회 속 개인의 문제들은 자연과학 분야와 달리 명쾌한 해답을 내놓기 어려운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럴 때 우리는 각자의 신념에 따라 행동하는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이번에 소개하는 영화 속 이야기에 대해서는 우리가 어떤 신념을 가져야 할까? 한 번 살펴보도록 하자.

 

주인공 마크는 폴리오 바이러스 감염에 의해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호흡보조기 없이는 숨쉬는 일도 쉽지 않은 중증의 장애인이다. 38살이 된 그에게 한 가지 바람이 있었는데 그것은 이성과 사랑해보고 싶은 것이다. 짝사랑이나 플라토닉한 것 말고 보통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매력적인 이성과 입을 맞추고 함께 누워보고 싶었던 것이다. 사실 마크의 몸에서 성적 능력에 이상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정상적인 성관계를 갖기에는 준비가 덜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마크는 성치료(Sex therapy)를 받기로 결심한다.

 

장애인의 성(性) 문제와 관련해 성 도우미라는 존재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보통 성도우미라 하면 신체적 장애를 가진 이들의 자위행위나 그들의 성관계를 도와주는 등의 간접적인 도움에서부터 직접 성관계를 맺는 활동까지 망라하는데 마크에게는 그 후자의 방법을 이 필요했던 것이다.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마크 역시 이런 낯설고 특별한 경험을 선택하는데 있어서 윤리적 갈등을 겪게 된다. 그럴 때 그의 친구이자 카톨릭 신부인 브렌단이 이렇게 얘기한다. “한 번 해보게. 하나님께서 자네에겐 특별히 허락하시는 것 같네...”

 

아이소리의 독자들 중에는 이와 같은 장애인의 성 문제에 대해서 많은 고민은 물론 직접 개입한 경험을 가진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필자가 하고 싶은 얘기는 성에 대한 얘기보다는 앞서 한 특수교사의 고백에서처럼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 그리고 제공하기 어려운 지원을 필요로 하는 타인에 대해 우리가 어떤 자세로 임하는 것이 옳은지에 관한 것이다.

 

영화를 본 사람들 대부분은 영화 속 주인공이 가진 인간으로서의 기본적 욕망에 대해서는 깊이 공감한다. 우리나라 정부도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 제29조를 통해 장애인의 성적 자기결정권 및 성을 향유할 권리에 대해 분명하게 지지하고 있다. 그러나 모든 악은 디테일(detail)에 있다는 말처럼 선언적 지지 이후의 실천방안을 고민하게 되면 만만치 않은 문제들과 조우하게 된다.

 

‘이 사회가 그들의 권리 인정을 넘어 섹스대행과 같은 지원도 제공해야 할까?’, ‘그런 일은 도대체 어떤 이들에게 해보라고 권할 수 있을까, 설령 당신 가족이 한다고 해도 지지할 수 있을까?’, 혹은 ‘비장애인이 비슷한 어려움을 겪을 경우에도 그러한 사회적 지원을 요구하는 것이 합당한가?'와 같은 의문 앞에서는 그다지 만족할만한 답이 나오지 않는 것이다. 또한 이런 고민 끝에 인정하기 싫지만 드는 생각이 있다. ‘그 동안 내 자신이 장애인을 위해 무언가를 하고 있다고 믿었지만 결국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의 입장이 아닌 내 자신을 위해 그어놓은 선까지만 다가갔을 뿐이구나. 그 밖의 일에 대해서는 너무도 쉽게 눈을 감았구나’와 같은 자괴감에 맘이 묵직해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렇다 해도 이러한 상황인식이 반드시 회의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 이유는 이 세상 문명의 모든 발전과 성과들이 어떤 현상에 대한 문제의식에서부터 출발했다는 점을 우리는 잘 알기 때문이다. 장애인 관련 법적 소송과 사회적 투쟁으로 거둔 성과들 역시 그 시작은 장애인이 겪는 불평등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지 않았던가? 그러므로 우리가 장애인을 돕기 위한 여러 활동에서 마주치는 많은 한계점과 어려움들도 현재는 딜레마에 해당될지 모르지만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그것들이 문제로 인식되는 순간 이미 해결의 실마리는 잡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사회 구성원들이 함께 사유하고 협력하며 용기 있는 선구자들이 획기적인 도전을 시도할 때 우리는 또 다시 전보다 더 따뜻해진 사회 안에 있게 될 것이라 믿는다. 이러한 고민 자체가 이미 한 걸음 내딛었다는 증거다.

 

(참고로, 이 영화는 미국의 마크 오브라이언(Mark O'brien: 1949~1999)과 그의 섹스 대행인(Sex Surrogate)인 쉐릴 코헨 그린(Cheryl Cohen-Greene: 1944~)의 실제 경험에 기초한 것이다.)

 

 

마크 오브라이언의 실제 모습

마크 오브라이언의 실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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