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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속 장애인 이야기-남경욱]사회적 괴물을 그린 <American Psycho>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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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20-08-05 오후 8:07:07 |
사회적 괴물을 그린
남 경 욱 단국대학교 특수교육과 연구교수
크리스찬 베일은 배트맨시리즈의 주연을 맡아 우리에게도 익숙한 배우다. 그러나 지금 소개하는 그의 2000년도 출연작 [아메리칸 싸이코]를 보고 나면 배트맨이 흉악한 범죄를 저지르지는 않을까하는 다소 우스꽝스런 걱정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배우가 연기를 잘했다는 의미다.
처음 영화 포스터를 들여다보면 잔혹한 칼부림이 난무하는 슬레쉬 호러무비의 느낌을 받게 되는데 정작 영화를 보면 폭력수위는 기우에 불과하다. 오히려 이 영화가 제법 괜찮은 영화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일인칭 시점의 앵글과 주인공의 독백을 통해 싸이코패쓰의 심리와 행동을 상당히 충실하게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 패트릭(크리스찬 베일 역)은 최고의 학벌과 금융회사의 CEO를 맡고 있는 일찌감치 성공해버린 청년이다. 그만의 독특한 점이라면 삶과 노동에 대한 애정보다는 자신의 몸을 치장하며 욕망을 좇는 일에 더 집중한다는 것이다. 수시로 자극적인 쾌락에 매달리다가 종국에는 살인을 통한 카타르시스에 함몰되어 버리고 만다. 전형적인 싸이코패쓰의 모습이 무엇인지 잘 보여주고 있다.
1920년대 독일의 쿠르트 슈나이더가 처음 소개한 개념인 싸이코패쓰는 반사회적 인격장애인을 가리킨다. 이들은 철저히 자기중심적이라 공감능력이 떨어지고 충동적 경향이 짙으며 쾌락을 추구하는 특징을 지니고 있는데 평소에는 잠재되어 있다가 주로 범죄를 통해 밖으로 드러나는 전인격적 병리현상이다.
울산과학기술대의 박승배 교수는 싸이코패쓰의 근본적 원인으로 잔인성이라는 인간 본연의 유전자를 지적하고 있는데 그것이 현대 사회에서 유독 도드라져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궁금하다. 가정의 역기능이 최우선적 원인이겠지만 무한경쟁의 각박한 현실과 상대적 박탈감 등 그러한 것들이 잔인성과 무감각함을 악화시키는 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부작용도 있을 것이다. 수많은 자극적 이미지와 텍스트를 담고 있는 인터넷은 예전엔 어른이 되어야만 알 수 있었던 내용들을 어린 아이들에게도 거침없이 보여주고 있다. 아이들은 이제 마음만 먹으면 무슨 내용이든지 어른보다 많이 알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제대로 된 배움의 장치를 통하지 않은 지식은 어린아이 손에 무기를 쥐어주는 것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그런 아이들을 함부로 훈육했다가는 무슨 봉변을 당할지도 모른다.
문제는 싸이코패쓰가 영화나 신문기사에만 등장하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더 이상 우리는 연쇄살인이나 엽기적 범죄를 외국의 사건으로만 여기지 않게 되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도 신문에는 어느 엽기적인 살인 및 시신훼손 사건 기사가 올라와 있다. 더구나 이런 싸이코패쓰 관련 사건은 신문지상의 이야기만도 아니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예비 싸이코패쓰들이 계속해서 자라나고 있다. 히끼꼬모리, 오타쿠, 왕따, 빵셔틀 등 그 이야기 속 가해자와 피해자들 모두 이 사회의 건전한 인격체로 성장할 수 있을지 심히 우려가 된다.
여러분은 이런 아이들도 자신과는 별 상관 없다고 여길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이걸 생각해보자. 끔찍한 사건들을 매일 아침 접하고도 즐겁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 여러분 자신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부지불식간에 우리 자신도 공감능력을 상실해가고 있다는 불안감을 떨쳐내기 어렵다.
싸이코패쓰에 대한 고민을 하다가 이 영화 주인공이 갖지 못했을 특성들을 추측해서 문제 하나를 만들어 보았다. 현재 우리 사회를 마음속에 그려본 후 풀어보길 바란다.
문제) 아래 보기들은 올바른 인간을 키워내기 위한 사회적 장치들이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제대로 기능하고 있는 장치를 모두 고르시오. 1. 가족의 사랑 2. 교육의 역할 3. 지역사회의 유대 4. 이 시대 진정한 롤 모델
보기 중 몇 가지를 꼽았는가? 쉽게 선택하기 어려웠다면 우리 사회는 앞으로도 싸이코패쓰의 출현을 막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비관적 예측을 해본다.
문득 홍상수 감독의 영화 속 등장인물의 대사가 떠올랐다. “사람한테 사람 이상의 것 요구하지 말아줄래?”, “사람되기 힘들어도 괴물은 되지 말자!” 이런 푸념섞인 절규가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현실을 말해주는 것 같아 씁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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