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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속 장애인 이야기-남경욱]편견과 멸시의 현실에서 발견한 <오아시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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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20-08-05 오후 8:05:56 |
편견과 멸시의 현실에서 발견한 <오아시스>
남 경 욱 단국대학교 특수교육과 연구교수
잘 알려져 있고 주위에서 보라는 권유도 많이 받았지만 도대체 연이 닿지 않는 영화가 있다. 필자에게는 이창동 감독의 2002년도 영화 <오아시스>가 그런 경우였다. 개봉된 지 어느덧 1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드디어 감상의 기회를 잡은 것이다. 과연 영화 오아시스는 좋은 영화에 목말라있던 필자에게 사막의 오아시스같은 단물을 제공해줄 지 한 번 들어가 보았다.
주인공 종두가 교도소에서 출소했다. 그는 점잖치 못한 언행을 일삼는 쉽게 얘기해서 별로 상대하고 싶지 않은 그런 부류의 인간이다. 그래도 그에게 가족이 있다는 것이 천만다행이다. 출소한 첫 날 무전취식으로 경찰서에 붙잡혀 갔을 때는 동생이 찾아와 빼내주었고, 종두의 형은 전과 3범인 동생을 중국집 배달부로 취직시켜 주었으니 참으로 형다운 모습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종두는 앞으로 맘잡고 열심히 살아 가족에게 보답하는 것이 도리일 것이다.
또 한 명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이름은 공주다. 다른 사람들 같으면 벌써 독립하고 결혼해서 아이도 가졌을 법한 나이지만 혼자서는 자기 밥도 챙겨먹지 못할 만큼 심각한 뇌성마비 장애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자기 방에서 라디오 듣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부모가 안계신 공주를 거두어주고 있는 것은 오빠와 올케인데, 멀리서 살다보니 공주를 직접 챙겨주지는 못해도 적지 않은 돈으로 사람을 사서 공주를 돌봐주고 있다. 바쁜 와중에도 공주의 생일날은 직접 찾아와서 챙겨주니 이 얼마나 고마운 분들인가? 공주도 이런 오빠네를 봐서라도 굳세게 살아가야 할 것이다.
사건은 종두가 혼자 사는 공주를 찾아가면서 벌어진다. 주위의 눈을 피해 공주의 아파트로 잠입한 종두는 저항조차 못하는 공주를 겁탈하려했고, 기어이 공주의 생일날에 불쌍한 그녀를 성폭행하다 체포되었다. 종두의 가족은 사건 뒷수습에 골치가 아프고 공주의 오빠와 올케는 동생이 불쌍하고 원통할 뿐이다.
필자가 기술한 여기까지 내용이 이 영화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종두와 공주를 둘러싼 가족들이 믿고 싶어 하는 줄거리인 것이다. 그렇다면 진실은 무엇이었나?
종두의 가족은 기본적으로 덜떨어진 종두가 가족이란 사실이 불편했다. 그들에게 종두는 흉하게 붙은 혹 하나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래도 우연한 기회에 실용적 쓰임새 한 가지는 있었으니, 죄를 뒤집어쓰고 형 대신 교도소에 보낸 것이다. 그럼에도 출소하는 날 흰 두부 사들고 마중하기는 커녕 연락도 없이 이사를 가버린 것이 그들의 진짜 모습이었다.
공주의 오빠네 부부는 또 어떠했나? 사지 몸을 못가누는 동생을 남겨두고 이사를 가버렸다. 이들에게도 동생은 무용지물에 불과했지만 역시 실용적 가치 하나는 외면하지 않았다. 장애인 앞으로 나온 아파트를 그들이 대신 누리는 것이었다. 그 댓가로 동생을 돌봐주는 사람에게 자그마치 월 20만원이나 되는 거금(?)을 쓰고 있으니 꽤나 셈이 분명한 분들임에 틀림없다. 그래서일까, 공주가 성폭행을 당했다고 믿고 있을 때도 종두의 형제들에게 시세에 걸맞는 합의금을 요구하는 모습을 보여주셨다.
그러면 출소한 종두는 왜 공주를 찾아갔던가? 형이 저지른 과실치사의 피해자 딸이 공주였던 것이다. 종두는 그저 그래야한다고 믿기에 형 대신 죄값을 치렀고 역시 그래야 할 것 같아서 피해자의 가족을 찾아간 것이다. 방법은 서툴렀지만 자기 나름대로 손을 내밀어 붙잡아준 것이다. 두 사람이 나눈 대화와 행동들을 보면 퍽이나 유치해서 앞 일이 걱정되지만 우리들의 잣대 위에 올리지는 말도록 하자. 가족들도 그들의 행복과 가치를 외면하고 있는 판에 두 사람만의 방식으로 행복을 맛보는 자리에 편견의 눈금으로 가득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부적절해 보이기 때문이다.
영화 후반부에 종두는 자신이 사랑하는 ‘불쌍한 어린 양’을 위해 자신의 능력과 처지를 넘어선 필사적인 노력, 아니 온몸을 던져 과련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보여주었다. 공주도 그런 종두를 향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방법으로 처절하게 종두를 부르짓었다.
냉혹한 현실이 영화 곳곳에서 우리를 슬프게 했던데 반해 마지막 장면에서는 영화감독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감옥에서도 자신보다 공주를 더 걱정하는 종두의 편지 목소리가 흘러나올 때 방을 쓸고 있는 공주의 모습에서 두 사람의 희망찬 미래를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토록 어두침침했던 방은 어느새 화사하고 따뜻한 햇살로 가득 차 있었다.
세상이 편견과 이기심의 모래알로 가득 차 있다 할지라도 어딘가 한 쪽에는 야자수 그늘과 함께 시원한 물을 마실 수 있는 오아시스가 있으리라 믿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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