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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속 장애인 이야기-남경욱]배려와 사랑의 이야기 : 聽說(청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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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20-08-05 오후 8:04:05 |
배려와 사랑의 이야기 : 聽說(청설)
남 경 욱 단국대학교 특수교육과 연구교수
대만에서 제작한 영화 한 편을 발견하였다. 그러고 보니 중화권의 홍콩영화는 헐리우드 영화 다음으로 많이 접했지만 대만영화는 떠오르는 게 없었다. 포스터에는 ‘두근두근 감성로맨스’라 적혀있고 청각장애인이 등장한다는 걸 안 이상 필자로서는 그냥 지나치기 어려웠다. 그들의 로맨스를 건청인의 그것과 어떻게 다르게 그렸을지, 또 그들이 경험하는 삶의 모습을 어떤 시각으로 담았을지 꽤나 궁금해졌다.
영화는 깍은 밤톨처럼 예쁘고 마음씨 고운 두 청춘남녀의 이야기로 줄거리는 로맨스 장르에 충실했다. 남녀가 우연히 만나 상대를 향해 애틋한 마음을 싹 틔운 후, 어느 사건으로 인해 갈등이 일어나지만 결국 그 갈등이 극복되면서 아름답게 마무리되는 순서로 전개된다. 이 자체만으로는 식상할 수 있지만 필자의 관심을 사로잡은 대목은 남자 주인공 티엔커가 여주인공 양양과의 결혼을 결심한 다음부터이다.
청각장애인과의 결혼을 결심하면서 서로가 상대에게 품게 되는 생각들 그리고 당사자의 부모가 그러한 일들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그것이었다. 티엔커의 부모는 겉으로는 아들에게 퉁명스럽게 대하면서도 마치 솥에서 막 퍼 담은 밥처럼 따뜻한 사랑을 주시는 분들이다. 특히, 예비 며느리를 처음 만날 때 빈 공책에 미리 환영의 글을 써서 맞이해주는 모습은 퍽이나 흐뭇하게 느껴졌다. 영화 후반부의 흥미로운 반전이 있으므로 더 이상의 상세한 이야기는 접어두기로 하자.
흔히들 역사에서 가정은 무의미하다고 하지만 개인사에 대해 상상의 시간을 갖는 것은 자유이니 한 번 해보도록 하자. 내 자신은 장애를 가진 이성에게 구애하고 끝까지 책임질 수 있을까? 혹시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남자 주인공 츠네오처럼 결국 힘에 부쳐 포기하게 되는 건 아닐까? 만약 내가 장애를 갖고 있다면 비장애인에게 청혼할 용기가 생길까? 한 걸음 더 나아가 내 자식이 배우자로 장애인을 맞이한다거나, 장애를 가진 내 자식이 상대 부모에게 결혼승락을 받으러 간다면 부모로서 심정이 어떠할까? 연애할 때는 보통의 사람들도 가수 장재인의 노래가사처럼 사랑하는 이에 비해 자신이 반짝이지 않아 보이기 마련인데 위와 같은 상상만으로도 뒤통수가 서늘해지는 걸 느낄 수 있다.
이 칼럼을 쓰면서 머릿속에 자주 맴도는 생각이 있는데, 그것은 과연 내가 그들에 대해 알기나 하는 걸까 하는 것이다. 장애가 가져오는 답답함, 장애인으로 대우받는 기분, 더 나아가 장애로 인해 차별받는 상황 등이 머리로는 짐작을 해도 가슴 깊이 알고 있다고 자신있게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서이다. 인종차별 및 소수집단의 고통을 다룬 소설로 전 세계 40여개 언어로 번역된 [앵무새 죽이기]의 저자 Harper Lee는 ‘당신이 그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지 않는 한, 당신이 그 사람의 피부 속으로 들어가 활보해보지 않는 한 그를 이해한다고 말할 수 없다’고 지적한 바 있다. 물론 우리가 장애인의 피부 속으로 들어갈 방법은 없다. 장애체험 행사를 한다고 해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고충을 완전하게 이해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나마 이와 같은 영화는 우리가 모르고 지나칠 수 있는 다른 사람의 삶을 가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든다.
다시 영화얘기로 돌아와서 티엔커의 부모가 보여준 행동을 할 수 있는 부모가 현실에 과연 몇 명이나 될까 궁금해진다. 티엔커의 엄마는 양양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처음엔 당황하지만 아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아빠와 함께 수화 학원 등록할까봐. 너도 알다시피, 엄마는 말을 못하면 못 사는 사람이야. 가끔은 턱이 쑤시지만 입을 좀 쉬게 해줄 때도 있어야하지 않겠니?” 오늘날 제 자식 사랑하는 마음에 다른 집 귀한 자식들에게는 잔인해지기 쉬운데 반해 진실로 상대방을 품어주려는 모습이 무척 신선하였다. 실제 이런 부모가 있다면 그 자식의 성품은 의심할 필요도 없으리라.
주로 쇼킹한 사건들이 관심을 받는 TV 드라마나 뉴스를 지켜보고 있자면 극단적이고 엽기적인 사람들이 이 사회를 대변하는 듯 보이지만 우리 주변에는 늘 티엔커 그리고 그 부모님처럼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고 믿고 싶다. 그게 아니라면 세상사는 맛을 찾기 어려울 것 같아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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