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이태리에서 있었던 실화에 기초한 이 영화는 어린 소년 미르코가 아버지의 엽총을 만지다 격발되
는 사고를 당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 일로 시력을 잃게 된 미르코는 자신과 가족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시
각장애인 학교로 보내지는데, 이것은 당시 교육법에 의해 강제되던 것이다. 또한 시각장애인 학교에서는 당
시 시각장애인이 사회에서 할 수 있는 일로 여겨졌던 전화교환수와 직조공 훈련만 시킬 뿐 아동의 소질이나
장래희망에 기반한 교육은 전혀 제공되지 않았다. 정부의 교육정책은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지나치게 친절
하고 안전하게(?) 행해졌던 것이다.
세상에서 들리는 소리에 남다른 감수성을 가지고 있고, 그 소리들을 녹음기에 담아내는데 천부적 소질을 가
진 미르코는 자신의 꿈과 무관하게 이루어지는 교육으로부터는 얻을 것이 없었다. 학교장의 억압 속에서도
미르코의 끼와 열정은 날이 갈수록 본모습을 드러내게 되고, 마침내 미르코와 급우들은 공동작업을 통해 행
복한 일탈의 순간들을 경험하게 된다. 영화는 이후 시각장애 아동이 일반학교에서도 교육받을 수 있게 법이
개정되었음과 함께 미르코가 이태리 영화계의 가장 유명한 음향기사중 한 사람으로 성장했음을 알려주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영화를 보는 내내 “장님이면 뭐 꼭 안마만 해야 하나?”라고 얘기하던 우리나라 어느 시각장애학생의 넋두리
와 함께 시각장애인이면서 우리 사회의 거목이 되셨던 고 강영우 박사가 교대로 떠올랐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이 처한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고 소질과 꿈을 좇아갈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부모와 정
부가 걱정하던 고위험이 현실이 될 때 그 어려움은 감당해내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여간해선 돌이키기도 힘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걱정은 천천히 해도 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왜냐하면 우리 주변엔 자신을 탐구
하면서 꿈을 키워가고 있는 아이들이 그리 많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장애를 지닌 아동이건 비장애 아동이
건 기성세대가 짜놓은 틀 안에서 안정된 삶을 누리라고 강요받는 것이 보다 흔한 광경이다.
혹자는 반문할지 모르겠다. 어른들 말씀 잘 듣고 안내된 틀을 따라 간 아이들이 결국 더 행복하다고 말이다.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위험을 감수하고 고수익에 도전하자는 것이 아니다. 점잖게 말해서 도전적 삶을
살자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자기결정에 의한 선택과 실천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판단과 능동적
경험으로 삶을 만들어가는 것이 바른 삶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도 반문해보시길 바란
다. 자신이 지금까지 자신의 삶을 살아왔는지 아니면 타인의 의도에 맞추어 살아졌는지를.
2014년 새해를 맞이해서 독자들께서 세운 모든 계획들이 알차게 실현되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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