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그런 악조건 속에서도 그가 개척한 삶은 실로 놀라울 따름이다. 동네 카페에서 처음 피아노를 접한
Ray는 학교에서는 클래식 음악으로 두각을 보였고, 연주자 겸 가수로 활동을 시작하면서 가스펠과 컨츄리,
리듬 앤 블루스 등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천재적 음악성을 발휘했다.
‘What'd I say', 'Georgia on my mind'(이 곡은 1979년 Georgia 주의 공식노래로 지정되었다.) 등 수많은 히트
곡은 빌보드 차트 상단에 수차례 이름을 올렸고 당대 최고의 인기로 미국 팝 음악계를 평정했다.
이 영화에서 눈에 띄는 점이 있다면 Ray가 가진 장애의 ‘미미한 존재감’이라 할 수 있다.
악보를 눈으로 볼 수 없다는 어려움은 기본이고, 지폐 액면가를 알 수 없어서 공연보수를 모두 1달러 짜리로
받아야 했던 어려움은 있었지만 그 모든 것들이 그의 인생행보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지는 못했다.
그가 지닌 시각장애는 세상을 사는데 있어서 다른 사람들도 저마다 가지고 있는 어떤 ‘불편한 것’ 정도였다.
영화 속에서 그의 어머니는 어린 Ray가 장애로 인해 좌절할 때 이렇게 힘주어 말했다.
“앞을 못본다 해도 결코 마음의 불구가 되어선 안돼!”라고.
우리 주변을 살펴보면, 살면서 받은 상처가 너무 커서, 혹은 사람들과의 깨어진 관계가 너무 버거워서 그것
도 아니면 기대했던 일들이 너무 안풀린다는 이유로 자신이 지닌 가능성을 펼치지도 못한채 포기하는 경우
를 자주 보게된다. 필자도 그다지 예외는 아닌 것 같다. 과연 시각장애인 Ray와 이런 보통의 사람들 가운데
누가 장애인인가? 책 속에 담긴 정의와 그 기술적 의미가 다를지언정 진정한 의미의 장애인은 그 불편함에
굴복한 후자의 사람들이 아니겠는가?
영화가 제작될 즈음 한 인터뷰에서 Ray의 실제 부인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의 여
행을 하는 것”이라고. 사람들에게 주어진 여건은 동일할 수 없다. 누군가는 빠른 차를 타고 먼 곳을 향해 달
리고 있고, 또 누군가는 원했던 건 아니지만 도보로 근처를 맴돌기도 하는 것이다. 필자의 생각에 Ray는 멋
진 차는 없었지만 걸어서 세계일주를 해낸 사람으로 여겨진다. 자신이 지닌 장애의 불편함이 결코 굴레가
되지 않았고 그렇게 되도록 놔두지도 않은 것이다.
Ray가 장애를 극복한 전설적 인물로 여겨질 수도 있지만 그의 사생활을 들여다보면 우리의 기대를 크게 벗
어난다. 영화에서는 아내 외에 두 명의 여성과 외도를 하는 것으로 나오지만 위키백과를 살펴보면, Ray는
일생동안 두 번 결혼했으며 10명의 여성으로부터 12명의 자식을 낳았다고 한다. 또한 16세부터 시작한 헤
로인과 마리화나 등으로 십수 년 간 약물중독에 빠져있었다고 한다. 이런 행위를 비호할 생각은 없다.
단지 그 역시 일반인들처럼 고달픈 여정 속에 자기 위안이 필요했던 ‘보통의 인간이었구나’하는 생각에 다소
연민의 정이 느껴질 뿐이다. 이 영화가 전설적인 실제 팝스타의 생애를 다뤘다는 점도 흥미롭지만 안보신 분
들께 권해드릴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Ray 역을 맡은 배우 Jamie Foxx는 이 역으로 2005년 미국 아카데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았는데 연기라
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스크린 안에서 진짜 Ray가 되어 있었다. 산적한 국내 정치문제로 도대체 분위기
가 느껴지지 않는 연말이지만 이럴 때 따뜻한 방에서 좋은 음악이 있는 영화 한 편 보는 것도 괜찮을 듯 싶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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