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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그래도 시스템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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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20-07-16 오전 10:27:57 | |
그래도 시스템이다
고정욱 작가
그 여학생은 내가 전국을 돌아다니며 강연한다는 걸 알고 시간과 장소를 묻더니 하루는 나에게 찾아와 자신의 삶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자신은 의사가 되어 환자를 진료하는 게 꿈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미 건강에 문제가 생겨 그 학생의 꿈은 그냥 꿈으로 끝날 공산이 컸다.
한창 꿈을 키워야 할 여중생이 뇌종양으로 인해 아무런 활동도 하지 못하고 엄마 아빠조차도 그러한 딸에게 묶여서 생계 위협을 받는 것을 보면서 나는 마음이 아팠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고작 따뜻한 밥 한 끼 사주는 게 전부였다.
여학생의 딱한 사연을 인터넷에 올렸더니 선한 영혼을 가진 사람들이 도움을 조금 주었다. 물론 나도 앞장서서 소액을 보태주었다. 그러면서도 마음은 여전히 안타까웠다.
그 얼마 뒤 여중생은 가스 난방비가 모자라니 도와 달라고 다시 연락을 취했다. 추운 겨울에 가스비가 떨어져 한 가족을 추위에 떨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번에도 조금 도와주었다.
최근에는 지독한 감기로 병원에 입원했는데 신종플루에 걸려 비싼 주사약값이 많이 들었단다. 입원비가 없어 퇴원을 못한다는 sos를 보냈다. 어린 여학생이 병원에서 퇴원을 못한다는 말에 가만히 있을 수 없어 다시 약간의 나눔을 실천했다.
여기에서 내가 하려는 이야기는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었다는 사실이 아니다. 이 세상엔 나보다 더 크게, 많이, 훌륭하게 남을 돕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말이다. 여학생의 경우, 경기도에 사는데 서울의 병원을 다녀야만 했다. 그러려면 아빠가 차를 운전해야 하니 일용잡급직인 생업에 지장을 많이 받았다. 엄마가 운전을 하면 좋겠지만 과거의 사고로 인한 강한 트라우마 때문에 운전을 하지 못한다. 게다가 병원비는 살인적으로 비싸다. 그런데도 지자체에 가면 여러 규정으로 인해 지원이나 도움을 받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한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구하고 살 수 있게 하는 것은 개개인의 간헐적이고 불규칙한 도움이 아니라 결국은 사회경제의 복지 시스템이다. 우리가 왜 입만 열면 시스템, 시스템 하는가가 바로 느껴졌다.
물론 제도로 모든 사람의 특별한 경우를 커버할 수는 없겠지만 시스템 안에서 움직일 때 비로소 사람들은 자동적으로 보호망 안에 들어간다. 사회는 변하고 있고, 저마다 처한 입장이 제각기 다르다. 시스템을 수시로 업그레이드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려서부터 장애인으로 차별받고 편견에 시달려온 내가 전국에 강연을 다니며 책을 쓰는 이유도 바로 그것이다. 개인이 개별적인 사안을 항의하고 따져봐야 세상은 크게 바뀌지 않는다. 세상을 바꾸려면 좀 더 크게, 많이 시스템을 바꿔야 하는 것이다.
교육과 인식개선이 그 강력하고도 항구적인 대안이 되겠다. 어린 시절부터 장애에 대한 인식 개선을 교육받고 장애인과 더불어 사는 세상을 경험하면 먼 훗날 그 사회는 장애인을 차별 하지 않는, 장애인과 더불어 사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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