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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속 장애인 이야기-남경욱] '나무랄 데 없는' 삶으로의 도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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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20-07-16 오전 10:20:46 |
‘나무랄 데 없는’ 삶으로의 도전 남경욱 단국대학교 특수교육연구소 / 교육학박사
새 영화가 나오면 가장 먼저 접하게 되는 것이 영화 제목과 포스터다.『언터처블: 1%의 우정』이라는 영화의 제목과 포스터를 접했을 때 ‘안 봐도 비디오네! 신분이 다른 두 사람이 우연히 만나 재미난 사건들을 함께 겪을 것이고 결국 저 하위 1% 흑인은 인생역전 하겠지 뭐~’라고 지레 짐작했다. 나 혼자만 그렇게 생각했을까? 아무튼 내 첫 느낌은 그랬다.
그러나 이 영화를 다시 눈여겨보게 된 건 영화정보 사이트에서 이 영화가 프랑스 영화라는 걸 확인하면서부터였다. 그렇다고 내가 유럽 영화에 더 후하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포스터 속 흑인을 보고 당연히 아프리카계 미국인일거라 추측했던 내 자신이 좀 우스웠을 뿐이다. 다시 포스터부터 면밀히 살펴보는데 ‘실화’라는 작은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순간 제대로 한 번 보고 싶어졌다.
휠체어에 앉아있는 필립은 준수한 외모와 막강한 재력가인 동시에 예술에도 조예가 깊어 수많은 여성들이 욕심낼만한 매력적인 남성이다. 그러나 그는 목 아래로 사지가 마비되었고 현재 그 능력 범위 안에서만 살고 있다. 장애가 그 인생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포스터 속에서 휠체어를 미는 듯이 보이는(사실은 전동 휠체어를 함께 타고 질주하는 장면이다) 흑인 청년 드리스는 어떠한가? 그 자신의 표현대로 ‘컴플리케이트(complicate)’한 상황에 처해있다. 어렸을 때 입양되었고 얼마 전에는 보석절도로 6개월 형을 살았다. 그야말로 희망을 갖기 어려운 궁핍한 현실이 그를 짓누르고 있는 것이다.
두 사람의 첫 대면에서 드리스의 거침없는 말과 행동은 필립의 호기심을 자극했고, 딱히 다른 삶의 대안이 없던 드리스는 필립의 일상생활 도우미로서 일을 시작하게 된다. 그런데 드리스는 필립의 예상을 간단히 넘어선다. 전신이 마비된 필립을 도무지 ‘장애인’으로 대우(?)해 주지 않아 필립이 “내가 그와 있으면 장애인임을 느끼지 못한다”고 고백하기에 이르른 것이다. 가식 없이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법을 보여주고, 이해조차 안 되는 미술품과 오페라에 대해서는 가차 없이 큰 소리로 비웃어준다. 버릇없는 필립의 딸에 대해서는 다른 사람들처럼 모른 척 눈감아 주지도 않는다. 그는 정말 살아 숨 쉬는 사람이다.
언뜻 보면 위험할 것 같지만 생명력이 느껴지는 드리스를 통해 필립은 재기의 발걸음을 띄게 되고, 드리스는 필립과의 만남을 통해 진짜 ‘컴플리케이트’한 것이 무엇인지를 보게 된다. 그리고 쿨 라이프의 길로 서로를 인도한다.
사실 장애인이 등장하는 영화들 중에는 장애 그 자체에 대한 이야기도 있지만 이 영화처럼 이야기를 풀어 가는데 있어 하나의 소품으로 등장하는 경우도 꽤 많다. 이를 통해 이 영화는 관객에게 어려움에 굴복하지 않고 정면도전하는 인생이 고통스럽지만은 않음을 보여준다. 오히려 한 걸음 더 나아가 기왕 사는 거 좀 더 신나게 살아보라고 격려하고 있다.
이 영화의 원제 Intouchables(앵뚜셔블)은 ‘건드릴 수 없는’이란 의미도 있지만 ‘나무랄 데 없는'이란 뜻도 있다. 그래! 공감이 된다. 세상 사람들은 물론 주인공들 자신도 멋진 스포츠카를 즐길 처지는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용기를 내어 차에 올라 엑셀을 밟는 순간 아름다운 도시의 불빛과 전원의 햇살이 그들의 것이 되지 않았는가? 그 모습야말로 암울할 수도 있는 우리의 인생에서 모두가 꿈꾸는 ‘나무랄 데 없는’ 모습이었다.
장애인과 관련된 일에 종사하는 이들의 모습을 필립과 드리스가 말하는 ‘실용’이라는 렌즈를 통해 들여다본다면 어떠할까? 외출할 때 드리스는 필립을 벤의 뒷 공간에 태우기를 거부하고 조수석에 앉도록 도와준다. 혹시 우리는 장애를 가진 당사자들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장애인용’ 삶을 강요하고 있는 건 아닐까? 장애를 너무 잘 알아서(어쩌면 그렇지도 못하면서) 장애라는 특성에만 너무 몰두하고 있는 건 아닐까?
영화 포스터 얘기로 다시 돌아와 보자. 음역한 제목은 그렇다 쳐도 부제인 ‘1%의 우정’ 그리고 ‘상위 1% 귀족남과 하위 1% 무일푼이 만났다!’ 라는 카피에 대해서는 ‘이건 아니잖아요!’라고 볼멘소리를 좀 하고 싶다. 프랑스판 포스터를 살펴볼까? 어느 편이 이 영화를 적절히 표현하고 있는지는 각자 판단해 보자.
끝으로 아직 못 보신 분들을 위해 이 영화의 아름다운 영상과 삽입곡들을 놓치지 말라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새벽의 차가운 공기, 나트륨 조명이 뿜어내는 도시의 불빛, 드넓은 창공과 바다가 스크린에 펼쳐지는 가운데 전설적 록그룹인 어스 윈드 앤 파이어(Earth, Wind, and Fire)의 경박하면서도 아련한 비트와 루도비코 에이나우디(Ludovico Einaudi)의 피아노 선율을 듣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의 가치는 충분하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