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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윤보영] 희망사항이 아니라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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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기간 (사업내용 개발 후 작업 예정)
등록일 2020-07-16 오전 10:19:29

희망 사항이 아니라 현실

 

윤보영 /보건복지부 서기관, 시인

 

 

 

"나는 장애인이 되지 않겠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분 계십니까?" 내가「장애인차별금지법」교육 중에 자주 하는 질문이다. 그때마다 손을 드는 사람은 없었지만 사실 나는 장애인이 되지 않을 거라 생각 했던 게 사실이다. 장애인 부서에 처음 발령받았을 때 일정 기간 근무하고 다른 부서로 가면 된다는 식으로 주어진 업무만 열심히 했다.

 

장애인 부서에서 국회 대비 야간근무를 하던 2009년 가을, 마침 다음날이 아내 생일이라 집 근처 마트에 들려 미역을 사야겠다는 생각에 서둘러 업무용 컴퓨터를 끄는 데 비밀번호 오류가 나왔다.

 

몇 차례 되풀이했지만 계속해서 오류가 나 스위치를 길게 눌러 끄고 집 근처 마트에 들려 일회용 미역을 사서 집으로 왔다. 매년 되풀이하는 일이지만 아내 생일만큼은 아무리 바빠도 미역국을 직접 끓여 주었기에 올해도 그렇게 할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잠을 청했다.

 

다음날 새벽 미역국을 끓이기 위해 주방에 갔다가 깜짝 놀랐다. 미역이 있어야 할 식탁에 커다란 커피가 올려져 있는 게 아닌가. 주방을 둘러봐도 미역이 없어 할 수 없이 아내에게 미역 대신 커피를 사 와서 미안하다고 얘기했다. 아내는 할 수 없다고 하면서도 못내 아쉬운 표정으로 직장에 출근했다.

 

사무실에 도착해서 다시 컴퓨터를 켜기 위해 비밀번호를 입력했지만 역시 틀린다는 메시지가 나왔다. ‘왜일까? 무엇 때문일까?’ 컴퓨터를 두고 서류를 꺼내다가 깜작 놀랐다. 글씨를 읽을 수 없다.

 

서둘러 사무실 근처 안과 전문병원에 갔다. 진찰 결과 신경에 이상이 있는 것 같으니 대형병원에 가보라는 의견을 주었다. 의사 소견대로 대학병원에 예약했고 다음 날 진료를 받은 결과 뇌출혈 의심이 있으니 정밀 검사를 받아보라고 했다.

 

뇌 사진을 찍고 아내는 집으로 들어갔지만, 뇌출혈 의심이 간다는 의사 설명이 마음에 걸려 긴장된 밤을 보냈다. 다음 날 새벽 수련의 선생님이 병실에 왔을 때 결과가 나왔느냐고 물었고 그렇다는 답변에 결과를 알 수 없느냐는 질문을 했다. 사진에 보면 머릿속에 혹이 있는 것 같다고 했고 악성일 수 있느냐는 질문에 그럴 수도 있다는 답변을 하고 병실을 나갔다.

 

‘악성 종양이라니, 그러면 통산 적으로 두어 달 밖에 못사는데’, 순간 눈앞이 캄캄했고 먼저 아내에게 전화해서 악성 종양이라 하는데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고 얘기를 했다. 어제 미역국 때문에 미안하다며 울먹이다 울음을 터뜨린 아내! 알고 보니 친척들에게까지 다 알려서 눈물바다를 만들었다.

 

앞으로 두어 달 밖에 못사는데 무엇부터 먼저 해야 할까? 일단 내 부의금을 모아 모교에 장학금으로 사용해 달라고 해야겠고 그다음 아이들은 어떻게 살아가지? 또 어머니에게는 어떻게 얘기하고. 그동안 소원했던 사람들에게 사과는 해야 할 텐데, 나를 알고 있는 지인들에게 이 사실을 어떻게 알리지? 비록 짧은 순간이었지만 참 많은 생각을 했다.

 

아홉 시가 조금 넘어 병실 회진이 시작되었고 내 앞에 다가와 잘 잤느냐고 묻는 의사선생님께 악성 종양이라고 하는데 앞으로 얼마를 더 살 수 있는지 알려 달라고 했다. 그래야 떠날 준비를 할 수 있다는 얘기에 깜짝 놀란 선생님께서 누구에게 들었느냐고 물었고 저기 뒤에 있는 선생님이 말을 했다고 했더니 쓸데없는 얘기를 했다고 심한 꾸중을 했다.

 

건강한 사람도 50%는 머리에 기형 혈관을 갖고 있는데 과도한 스트레스로 혈관에 압력이 놓아 시신경을 눌렀고, 잠시 글씨 판독을 못 하는 현상이 왔다고 했다. 등산을 가거나 잠을 잘 때 혈관 압력이 높아져 터졌을 때 기억력 상실 등의 장애를 입을 수가 있다고 했다. 정말 아찔한 예고였다. 당시 기형 혈관 제거 수술로 완치하긴 했지만, 그때부터 장애인 업무를 하는 동안 늘 장애인 입장에서 먼저 생각했고 장애인에게 이익이 가는 일을 찾아가며 처리해 주고 있다.

 

현재 등록 장애인 250만 명 중 후천적으로 발생한 장애인이 89%나 된다고 한다. 일부 학자가 주장하는 것처럼 등록하지 않은 장애인 250만 명을 합하면 10명 중의 한 명은 장애인이다. 수업 시간에 손을 들지 않은 사람 중에는 장애인과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모두 장애인이 될 수 있는 환경에 살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 장애인에 대한 편의시설과 인식에 차별이 없도록 해 주는 것은 남을 위한 일이기보다 나 자신과 가족, 그리고 이웃이나 직장 동료를 위한 일이라고 본다.

 

장애인이 장애로 인해 불편을 겪지 않는 환경이 제공되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정책이 마련되고 집행되었으면 좋겠다. 동료와 승용차 함께 타기로 출근하다 교통사고를 당해 장애인이 된 어느 고등학교 교사가 복직 후 근무하는 데 어려움이 많을 것 같다고 미리 걱정한 것처럼 우리 사회 곳곳에는 아직 장애인에게 어려움을 주는 환경이 많이 있다. 지금쯤 그 교사가 편의시설이 잘 마련된 학교에서 근무하는 게 희망 사항이 아니라 현실이 되었으면 하고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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