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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속 장애인 이야기-남경욱]인간 정체성의 메타포 "잠수종과 나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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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20-08-05 오후 8:21:22 |
인간 정체성의 메타포 "잠수종과 나비"
남 경 욱 박사 (단국대학교 특수교육과 강사)
이 영화의 제목을 처음 들었을 때 ‘도대체 잠수종이 뭐지?’하는 의문이 들었다. 찾아보니 영어 ‘Diving Bell’을 직역한 것으로, 잠수부가 착용하는 헬멧식 잠수기를 의미했다. 이 장비는 마치 우주비행사들의 헬멧을 연상케 하는데, 이것을 착용하고 바다 속 수십 미터 아래로 내려가면 얼마나 힘들고 갑갑할까? 잠수종은 건강했던 Bauby가 장애를 얻게 된 후의 무력함을 은유하는 장치이다.
1995년 12월 8일, 프랑스의 배우이며 작가이자 잡지 Elle의 편집자인 Bauby는 43세의 한창 나이에 뇌졸증으로 쓰러진다. 20일 간의 혼수상태에서 깨어났을 때 그의 몸은 왼쪽 눈꺼풀을 제외한 전신이 마비되어 있었고, 화려했던 과거로 되돌아 갈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장애인이 된 것이다. 송두리째 능력을 박탈당한 이의 심정은 과연 우리가 추측하는 수준을 넘어설까? Bauby는 재활훈련을 통해 대화상대가 빈출 알파벳(E, S, A, R, I~)을 순차적으로 들려주면 원하는 알파벳에서 눈을 깜빡여 의사를 표시하는 방법을 익혔는데, 그가 표현한 첫 문장에서 짧지만 그의 심정을 읽을 수 있었다. “나는 죽고 싶다.”
그러나, 거의 모든 신체적 능력을 앗아간 장애라 해도 어쩌지 못한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Bauby가 가진 ‘기억’과 ‘상상’의 힘이다. 몸을 움직이지 않아도, 눈을 뜨지 않아도 Bauby는 아름다운 자연과 사랑했던 사람들을 추억할 수 있었고, 상상을 통해 무한한 우주를 여행할 수도 있었다. 나비는 장애를 얻은 후에도 온전히 남아있는 자유와 창조의 힘을 상징한다.
Bauby의 나비는 주저함 없이 하늘을 날기 시작했다. 매일 새벽 다섯 시에 깨어나 생각을 가다듬은 후 아홉 시부터 일 분에 평균 두 단어의 속도로 자신의 이야기를 꾸준히 기록해 나갔고, 마침내 이십만 번 이상의 눈 깜빡임 끝에 1997년 3월 7일 ‘잠수종과 나비’라는 회고록을 출간한 것이다. 문단의 호평 속에 이 책은 출판 첫 주 십오만 부 그리고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수백만 부가 팔렸다. 그런데 그 나비가 잠수종을 남겨놓은 채 세상 저편으로 날아가 버린 걸까? 출판 이틀 후인 3월 9일 Bauby는 폐렴으로 사망했다.
장애에 대해 공부하거나 장애인과 더불어 사는 사람들이라면 ‘장애가 무엇인지’ 그리고 ‘장애인으로 사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등에 대해 고민해보기 마련이다. 그러다보면 자연스럽게 인간이라는 존재의 정체성에 대해 생각할 수 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한 중도장애인의 이야기를 통해 모든 인간이 가진 유한함과 무한함의 두 속성을 보여 준 ‘잠수종과 나비’는 장애와 장애인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정리하는데도 도움을 줄 수 있는 것 같다. 영화에서 Bauby가 자신의 딸과 아들이 되도록 많은 나비를 가지기를 희망하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는 관객으로 하여금 어떤 가치를 추구하면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간절히 그리고 친절하게 호소하고 있었다.
(자서전을 집필하고 있는 Bauby의 실제 모습)
“잠수종과 나비”를 끝으로 영화칼럼을 마무리하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 영화칼럼을 사랑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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