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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속 장애인 이야기-남경욱]성공한 자폐인의 비결 "템플 그랜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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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20-08-05 오후 8:18:30 |
성공한 자폐인의 비결 [템플 그랜딘]
남 경 욱 박사 (단국대학교 특수교육과 강사)
자폐성 장애를 지닌 사람들 중 템플 그랜딘(Temple Grandin)만큼 유명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녀는 장애인임에도 불구하고 저명한 동물행동학 학자의 반열에 올랐을 뿐만 아니라 장애인 당사자로서 자폐에 대한 이해증진 및 자폐아동의 권리옹호에 기여해 2010년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세계의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영화 [템플 그랜딘]은 바로 그녀의 전기영화이다. 어릴 적부터 타인과 어울리길 싫어하고,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말을 지속적으로 반복한 템플은 가족의 걱정거리이자 친구 한 명 없는 외톨이였다. 그러던 템플의 삶이 달라진 건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부터이다. 그녀의 자폐특성을 이해한 과학 선생님 칼록(Carlock)은 그녀를 격려하는 가운데 과학적 호기심을 지속적으로 자극하여 템플이 즐거운 마음으로 공부할 수 있게 해준 것이다. 멘토에 의해 자신만의 세계에서 나온 템플은 호기심이 가는 현상들을 함께 탐구할 수 있게 되었고 그것이 오늘날 성공의 첫 번째 발판이 되었다.
또 다른 성공요인은 그녀가 가지고 태어난 장애 안에 숨어있었다. ‘특별한 주제에 대한 독특한 관심’이라는 자폐특성 한 가지를 장점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그러한 특성은 종종 교정되어야 할 문제행동으로 여겨지기 쉽지만 그러한 특성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개발할 수 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목장에서 사육하는 소들의 행동을 소의 입장에서 접근한 템플은 일반인들보다 소의 행동을 훨씬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이를 기반으로 설계한 가축이동시스템이 대성공을 거둔 것이다. 이 시스템은 오늘날 북미 목장의 절반이 넘는 곳에 설치되었다고 한다.
그러면 위의 두 가지 설명으로 그녀의 성공이 모두 설명될 수 있을까? 남은 것이 하나 더 있다. 아무리 재능이 있다 할지라도 도전이 없으면 허사이다. 지나치게 예민한 감각을 지녔던 템플은 영화에서 보듯 자동문에 대한 공포증 때문에 슈퍼마켓을 드나드는 일조차 두려워했지만 자신 앞에 놓인 인생의 관문들은 용감하게 통과해 나아갔다. 한 번 문이 열릴 때마다 그곳에는 이전에 몰랐던 새로운 세계가 펼쳐졌고 그녀는 멈추지 않고 그 문들을 통과해 오늘에 이르렀다.
멘토의 이해와 적절한 지도, 자신이 가진 남다른 특성의 개발, 그리고 용감한 도전정신 이 세 가지가 어우러져 오늘 날의 템플을 만든 것이다. 특히 이 세 가지 요인들 중 두 번째 ‘남다른 특성의 개발’은 그녀에게 장애가 그저 장애로 머물지 않고 하나의 능력이 되어 돌아왔다는 점에서 우리의 흥미를 자극한다.
자폐성 장애인을 처음 만난 사람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다. 그들의 행동특성이 사회의 일반 상식이나 규범에서 벗어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러한 특성들을 고쳐야 할 증상으로 보고 일반인의 평균적 속성을 강요하기도 한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에게 그러한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타당할까? 템플은 어느 강연에서 자폐적 특성을 가진 이들이 없었다면 인류는 지금도 동굴에서 모닥불을 쬐고 있었을지 모른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자폐적 특성을 지닌 한 원시인이 돌이라는 물체에 대해 독특한 관심을 가짐으로써 돌칼을 발명했고 그러한 사건들이 계속 쌓여 오늘날 인류문화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녀는 실리콘 밸리에 자폐적 특성을 가진 이들이 넘쳐난다는 농담 반 진담 반 얘기도 덧붙였다.
생각해 볼 일이다. 우리들 각자가 가지고 있던 독특함은 지금 어디서 숨 쉬고 있을까? 예전에 학생들 모두가 암기했던 국민교육헌장에 따르면 국민 각자는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을 개발할 의무가 있었는데 말이다. 돌이켜보면 그 헌장과는 정반대로 규격화된 삶을 강요받으며 살았던 것 같다. 이제 성인이 된 자신을 바라볼 때 자신만의 가치와 개성을 내세울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싶다.
템플은 위의 강연에서 개인의 독특한 특성이야말로 창의성과 생산성의 원천이라는 설명과 함께 자폐아동을 위한 최고의 교육은 흥미를 갖고 있는 대상을 즐길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라 했다.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독특한 재능을 가진 많은 꿈나무들이 이해와 격려를 받지 못한채 억울하게 ‘오타쿠’라는 소리를 들으며 살고 있는 건 아닐까 걱정된다. 그들을 격려하고 용기를 불어넣어 인류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재목으로 만드는 건 우리 모두의 몫이라는 생각이 든다. |